17:17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 |
(평양 8월 2일발 로동신문 - 붉은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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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군계급교양관에 전시된 자료들을 보며 원쑤에 대한 치솟는 증오를 안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소박하고 평범했던 인간들이 자기의것을 지켜 죽음도 불사하고 나설 때 어떤 놀라운 기적이 창조되는가를 똑똑히 보여준것이 우리의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이였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고원군에 기여든 미제원쑤들은 강점 50여일간 수백명의 인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오늘의 전탄리의 어느한 고개에서만도 놈들은 130여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생매장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부녀자들도 아이들도 가림이 없이 무차별적으로 살륙한 원쑤들의 죄행은 침략자 미제에 대한 고원군인민들의 치솟는 증오심을 총폭발시키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조국의 귀중함을 준엄한 시련의 시기에 더욱 가슴깊이 새긴 이들은 고향땅에 기여든 원쑤들을 쳐부시기 위한 싸움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그 대표적인 투쟁의 하나가 바로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고원인민유격대의 활동이다. 1950년 10월 백수십명의 당원들과 애국적인민들로 조직되였던 유격대는 전투과정에 수백명의 대오로 강화되였다. 고원군은 철도수송에서 유리한 지역에 위치한것으로 하여 당시 미제침략군의 주요작전지점의 하나로 되였다.유격대원들은 산간지대를 근거지로 정하고 활동하면서 군안의 전체 인민들을 원쑤격멸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다.이들은 고원으로부터 평원선일대에 4개의 방어선을 펴고 적의 공격을 물리치는 과감한 전투를 진행하였으며 양덕, 거차방면에서 적군용렬차들을 습격하고 철다리와 차굴을 폭파함으로써 전선동서부간의 수송을 보장하려고 발악하던 적들의 기도를 파탄시켰다.그리고 《빨찌산통신》, 《대대통신》, 《진격》이라는 선전문을 찍어내고 《인민군대가 다시 나온다》, 《미제침략자들에게 죽음을 주라!》는 삐라를 도처에 뿌려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그 나날 유격대는 수많은 적들을 살상하였으며 인민군대와의 련계밑에 고원군소재지를 비롯한 많은 지역을 해방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였다.고향을 피로써 지켜싸운 애국자들의 대오속에는 나어린 소년들도 있었다.그들이 바로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서강렴소년을 비롯한 소년근위대원들이였다.고원소년근위대는 《적들의 기만선전에 속지 말라!》 등의 내용이 실린 삐라와 격문, 포고문을 도처에 뿌리고 놈들의 소굴에 폭발물을 설치하여 수많은 적들을 소멸하였으며 통신선을 끊어놓아 통신련계를 파탄시켰다. 서강렴소년은 원쑤놈들에게 체포되여 최후를 마치는 순간에도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부르며 원쑤들을 전률케 하였다. 사랑하는 조국과 고향땅을 위해 용감히 싸운 전세대들의 투쟁은 오늘도 고원군계급교양관을 찾는 새세대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그들가운데는 서강렴렬사의 이름으로 명명된 고원군 서강렴고급중학교의 학생들도 있다.우리와 만난 이 학교의 교장은 지금 학생들속에서 소년렬사가 지녔던 열렬한 조국애와 계급적원쑤들에 대한 견결한 투쟁정신을 본받아 사회주의조국의 믿음직한 수호자, 고향땅의 진정한 주인으로 자라나려는 열의가 날로 높아가고있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학생들의 글짓기능력을 높여주기 위한 경연을 조직하는데 거기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작품들의 대부분이 서강렴소년의 투쟁내용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덕지강의 아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서강렴소년처럼 조국의 참된 아들이 되려는 결의를 토로하였던 한 졸업반학생이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았지만 용약 인민군대에 탄원한것을 비롯하여 학교의 많은 졸업생들이 렬사앞에 떳떳하려는 자신들의 맹세를 결코 작품의 글줄에만 새겨넣은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지켜가고있다. 교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굴함없는 투쟁과 용감성으로 위대한 전승사와 고향땅에 뚜렷한 자욱을 아로새긴 전세대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따라배우며 나날이 성장해가고있는 새세대들의 장한 모습을 그려보았다. 세대가 바뀌고 세월은 흘러도 전세대들이 지녔던 투철한 조국수호정신, 견결한 계급의식은 더욱 굳건히 계승되고 꿋꿋이 이어지고있다.미제가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온다면 우리는 산악같이 떨쳐나 원쑤들을 단매에 죽탕쳐버릴것이다. 글 및 사진 박설림 오늘도 울려오는 신념의 노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적신념을 굳건히 간직한 사람만이 혁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수 있으며 조국과 인민앞에 떳떳할수 있습니다.》 오늘도 고원군사람들이 잊지 못해 전해가는 렬사부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고원군의 어느한 리에서 있은 일이다. 리의 원호사업을 책임진 방락구동지와 리녀맹위원장으로 사업하던 그의 딸 방순희녀성은 맡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뒤늦게야 집결장소로 향하던중 길목에 틀고앉아 사람잡이에 미쳐날뛰던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은 악질빨갱이부녀를 잡았다고 쾌재를 올리며 그들을 저들의 소굴로 끌고갔다. 당원들이 숨은 곳을 대라고 하는 놈들을 증오에 찬 눈길로 쏘아보며 그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회유와 기만에도 굴하지 않는 그들의 신념을 꺾어보려고 원쑤들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악착한 고문을 련이어 들이댔다. 마을에서 《꾀꼴새》로 소문났던 방순희녀성에게로 다가간 놈들은 공화국의 노래는 그렇게 잘 부른다는데 저들의 노래를 한번 불러보라고, 그러면 살려주겠다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지껄이였다. 그러자 방순희녀성은 놈들에게 노래를 부르라면 못부를줄 아느냐고 웨치며 해방후 분여받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흥겹게 부르던 《밭갈이노래》를 불렀다.이어 아버지도 딸과 함께 추억깊은 그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그때 이들의 눈앞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조국땅에서 《밭갈이노래》를 부르며 꿈만 같은 행복을 누려가던 해방후 5년간의 잊지 못할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해방전 너무도 가난하여 사랑하는 딸에게 옷 한벌 해주지 못하는 설음을 늘 안고 산 방락구동지였고 배우고싶어도 돈이 없어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방순희녀성이였다. 해방후에야 이들은 비로소 인간의 참된 삶을 받아안게 되였고 평범한 농민들이였던 그들부녀는 나라의 은덕으로 리의 사업을 맡아보는 일군으로 자라날수 있었다. 리사업을 위해 밤낮을 잊고 뛰여다니는 부녀의 모습을 보며 마을사람들이 열성부녀라고 정담아 불러줄 때면 그들은 일을 하고 또 해도 힘든줄 몰랐다. 그 무엇으로써도 이들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된 공화국에 대한 신념을 허물어버릴수 없게 되자 악에 받친 놈들은 그들부녀를 방뚝우에 세워놓고 이제라도 제놈들의 노래를 부르면 용서해주겠다고 뇌까렸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여전히 《밭갈이노래》가 울려나왔다. 숨이 지는 순간까지 그들이 부른 신념의 노래는 적들을 전률케 하였다. 미제야수들의 악착한 만행앞에서도 굴함없이 싸운 렬사부녀의 노래소리는 혁명적신념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깊이깊이 새겨주며 오늘도 울리고있다. 본사기자 덕지강에 서린 원한 준엄했던 1950년의 그 나날 고원군을 감돌아흐르는 덕지강에도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에게 무참히 학살된 애국자들과 무고한 인민들의 피가 흘렀다.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고원군에 기여든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무고한 인민들을 악착하게 살해하였으며 덕지강에서만도 천인공노할 만행을 수없이 감행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덕지강다리에 틀고앉아 사람들에게 갖은 악행을 일삼은 미제야수들은 인간살륙을 도락으로 삼는 피에 주린 승냥이였다. 놈들은 수많은 고원군인민들을 덕지강반으로 끌고나와 총탄을 퍼부어 학살하였다.하여 덕지강철다리밑에서는 총성과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끊길새 없었고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가득 넘쳐흐르던 이 강은 강점 며칠만에 원한의 강, 분노의 강으로 화하였다. 2008년 1월 덕지강다리건설장에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이 투하한 불발탄이 발견되여 군안의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미제원쑤들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적개심으로 끓어번지게 하였다.전쟁의 그날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누구나 무심히 오가던 덕지강다리에서 발견된 불발탄은 사람들에게 덕지강에 서린 원한의 력사를 다시금 새겨주었다. 그때 해체한 불발탄이 지금 고원군계급교양관에 전시되여있다.덕지강에서 저지른 미제의 학살만행과 덕지강다리에서 발견된 불발탄을 보며 참관자들은 고향땅을 감돌아흐르는 강물에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될 원한이 깃들어있음을 자각하고있다. 70여년전 덕지강에서 울리던 피의 절규는 오늘도 우리에게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에 대한 복수의 의지를 더욱 억세게 가다듬게 하고있다. 본사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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