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 우리 식의 사회주의를 빛내여나가는 애국의 길에서 | |
로동신문 2025년 9월 3일 수요일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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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국의 명산을 온 세상에 더욱 빛내이는 길에서 금강산이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등록되기까지에 바쳐진 탐구의 나날을 더듬어 지난 7월 프랑스의 빠리에서 진행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47차회의에서는 조선의 명산인 금강산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등록하였다. 하여 예로부터 우리 인민의 자랑으로 되여온 금강산이 자연과 문화의 혼합유산으로서 더욱 의의있는 인류공동의 재부로 명성을 떨치게 되였다. 금강산이 온 세계에 더욱 빛을 뿌리게 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금강산의 돌 하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를 조국의 귀중한 재부로 소중히 품어안고 근 10년세월 탐구의 길을 묵묵히 헤쳐왔다. 조국의 귀중한 모든것을 어떻게 지키고 빛내여야 하는가를 이들이 새겨온 헌신의 자욱이 말해주고있다. 과학자의 량심으로 나선 초행길 우리 나라의 우수한 유산들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는 사업은 우리 국가의 위상을 높이 떨치고 인민들에게 강국의 공민된 긍지와 영예를 더욱 깊이 심어주는데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고구려벽화무덤과 개성시의 력사유적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는데 우리 나라의 우수한 물질유산과 비물질유산, 자연유산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당의 숭고한 뜻을 받들고 문화유산보호부문에서 금강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한것은 2016년부터였다. 그때로 말하면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높은 정치적열의와 빛나는 로력적성과로 맞이하기 위한 70일전투로 온 나라가 들끓고있었다. 해당 단위 일군들과 과학연구기관, 교육기관 과학자, 교육자들이 모인 회의에서는 예로부터 세계적인 명산으로 알려진 금강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사업이 상정토의되였다. 금강산은 응당 세계적인 유산으로 되여야 하며 또 될수 있다는 신심에 넘쳐있는 사람들이 과반수였다. 그러나 일부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리유가 있었다. 사실 해당 나라의 가치있는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기준과 조건은 매우 엄격하였다. 유네스코는 세계적으로 특출한 보편적가치를 가지는 자연 및 문화유산을 확인, 보호, 보존, 전시하고 후세에 물려주는것을 목적으로 1972년에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였다.이에 따라 추천된 유산을 놓고 10가지 기준에서 하나이상에 부합되는 경우 그 유산에 특출한 보편적가치가 있다고 보고 세계유산으로 등록한다. 세계유산추천과 관련한 평가사업에 국제자연보호련맹, 국제기념비 및 유적리사회, 국제문화유산보존 및 수복연구쎈터와 같은 여러 국제기구의 권위있는 수십명의 학자들이 동원되여 전문가적인 견지에서 가장 엄밀하게 검토한다는 사실은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는 사업이 얼마나 품이 드는가를 짐작할수 있게 한다. 그때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업을 단순히 실무적인 사업이 아니라 당이 안겨준 영예로운 과업으로, 우리 당의 문화유산보호정책을 세계에 널리 해설선전하는 중요한 사업, 우리 조국의 래일과 잇닿아있는 애국사업으로 내세우고 이를 적극 지지해나섰다. 하여 연구집단이 구성되고 해당한 실무적인 조치들이 취해졌다. 그해 6월 금강산의 구룡연구역으로 신심있게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오르는 도중에도 몇번이나 멈춰서서 제각기 주변을 살피면서 기암을 앞에 놓고 필요한 수치를 재기도 하고 암석들을 주어 확대경으로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그들을 보며 현지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무슨 연구사업에 종사하는 학자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남다른 사명감을 안고 이 탐험을 하고있는지 다는 알수 없었다. 이들이 바로 금강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사업에 동원된 연구집단성원들이였다. 문화유산보호부문의 실무일군인 리성철동무와 실장들인 김정철, 류덕인, 김일성종합대학 자원과학부 연구사 량도준, 자연과학연구원 연구사 전원석, 생명과학부의 실장 오철수, 오랜 교육자인 황천복, 외국어문학부 강좌장 리무일 그리고 국가과학원 지구환경정보연구소 실장 리룡수동무였다. 그들의 배낭에는 주먹밥과 물병 그리고 여러가지 기재가 들어있었다. 《량도준선생님, 이 탐험이 얼마나 걸릴가요?》 《아마 한 3년쯤 걸리겠지....》 량도준동무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산으로 오르는 전원석동무의 눈빛은 진지하였다.새세대 청년과학자로서 그는 이번 연구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낼 결심을 단단히 하고있었던것이다. 지질전문가들로서 이들이 맡고있는 몫이 제일 중요하였다. 금강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자면 이를 증명하는 과학적인 자료들이 안받침되여야 하였다. 더우기 우리 나라에서 지금까지 고구려벽화무덤과 개성시의 력사유적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자연 및 문화유산의 등록사업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하여 현지로 오기 전에 이들은 금강산과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수집하여 분석해보았다.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서술한 도서와 자료들은 많아도 지질학적, 생물학적특징 등을 놓고 과학적으로 분석한 자료들은 찾기 힘들었다.일부 언급된 자료들도 있었지만 그 폭과 심도가 매우 빈약하였다. 이를 놓고 이들은 자신들이 지닌 본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였다. 지금까지 세계적판도에서 지질구조와 지질현상들을 놓고 강의도 하고 연구도 해왔지만 내 조국의 자랑이고 세계에 명성높은 금강산을 너무도 모르고있다는 자책감이 갈마들었다. (우리의것을 더 잘 알고 빛내이는것이 바로 애국이고 과학자의 본분이 아니겠는가.) 주체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교육자, 과학자로서의 마땅한 본분과 사명에 대하여 그때처럼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고 량도준, 전원석동무는 추억속에 우리에게 말하였다. 생명과학전문가로서 금강산의 생물다양성을 밝혀내여 우리 인민이 사랑하는 명산을 세계에 널리 자랑하려는 황천복, 오철수동무의 결심도 다를바 없었다. 모든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각오를 안고 이들은 금강산에로의 현지탐험의 길에 적극 뛰여들었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를 파헤쳐야 하는 어려운 길이였다. 그러나 우리 세대가 반드시 이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자각은 이들을 주저없이 초행길에로 떠밀어주었다. 그때부터 이들의 탐험길이 시작되였다. 처음에는 3년이면 끝낼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이 그후 이 연구사업을 위해 10년을 고스란히 바치게 될줄은 당시에는 누구도 알수 없었다. 그러나 그길에서 힘들다고 물러선적은 없었다. 당이 안겨준 영예로운 혁명임무수행에 돌입한 과학전사의 드팀없는 자세, 우리 세대 과학자들이 다음세대 과학자들에게 빈종이장을 넘겨줄것이 아니라 과학적수치들로 가득찬 연구결과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과학자의 량심은 어려운 탐험의 길을 끝까지 가게 하는 원동력이였다. 깊은 산중에 자욱은 남지 않아도 연구집단성원들은 한해에도 두차례씩이나 금강산에로의 탐험길에 나서군 하였다.한번의 출장길은 보통 한달이상이였다. 현지에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 사색과 실험을 거듭하고 문헌들도 조사해보며 실마리를 찾고 다시 현지에 가서 거듭 확인하면서 금강산이 안고있는 비밀을 하나하나 밝혀내군 하였다. 구룡연구역에 대한 조사를 할 때였다. 구룡대에서 백수십m나 되는 아래에는 8개의 담소로 이어진 아름다운 상팔담이 있다.비취색을 띤 담소들은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그럴수록 량도준동무는 상팔담으로 쏠리는 마음을 누를수 없었다. (상팔담이 형성되게 된 원인을 밝혀내자면 꼭 저기로 내려가야 한다.) 위험을 동반하는것으로 하여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이였다. 《꼭 내려가보아야 하겠습니까?》 《내려가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연의 비밀을 알수 있겠소.》 만류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량도준동무의 얼굴에는 굳은 결심이 어려있었다. 여러 연구사가 따라나섰다.그들과 함께 가파로운 벼랑을 한치한치 힘겹게 내려갈 때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었다.비오는 날에도 또다시 이곳을 찾아 조사를 더욱 깐깐히 하였다. 이 과정에 빙하의 흔적을 발견하고 여러 계단으로 된 상팔담이 빙하작용과 같은 지질학적과정을 거쳐 형성되였음을 알수 있었다.이와 함께 여러 구역에서 빙하를 포함한 다양한 침식요인들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게 되였다. 그전까지 금강산에서는 빙하기의 흔적이 없었던것으로 간주되여왔다.하여 이 발견은 지질학계에 새로운 파문을 일으켰다. 수정봉, 바리봉구역을 조사할 때에도 넓고 평평한 큰 바위로 이루어져있는 령마루에 각이한 크기의 수많은 돌확들이 나있어 여러해동안 량도준, 전원석동무를 괴롭혔다. 물에 풀리지 않는 화강암에 어떻게 되여 크기가 각이한 돌확들이 형성되였는가. 네차례나 이곳을 찾으면서 돌확상태를 꾸준히 연구하던 끝에 이들은 거정암쪼각들을 찾아낼수 있었다.거정암의 립자가 비교적 큰것으로 하여 먼저 풍화되였고 이 과정에 돌확이 형성되였던것이다. 이에 기초하여 이들은 《금강산지구 풍화공의 특징과 형성원인에 대한 연구》라는 론문을 발표할수 있었다. 오직 과학자의 눈으로 확인하고 과학으로 증명된것만을 연구일지에 기록하군 한 이들이 걷고걷는 길은 명산의 경치를 부감하며 즐기는 유람길이 아니였다. 때로는 돌밭을 걸어야 하고 때로는 아찔한 바위우에 드리운 사다리를 붙잡고 바람에 흔들거리는 몸을 지탱하면서 한치한치 수백m를 올라야 하는 아슬아슬한 모험도 겪어야 했다. 탐험길에 늘 지고다닌것이 지질콤파스와 지질망치, 도래자, 사진기와 지질조사기록장 그리고 간편하게 준비한 점심식사뿐이였지만 그것도 어떤 때는 천근만근의 무게로 느껴지군 하였다. 몇시에 점심식사를 한다는것도 정해져있지 않았다.점심식사시간이 퍼그나 늦어지군 하여 점심 겸 저녁식사가 되는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김정철, 류덕인동무를 비롯한 문화유산보호부문의 전문가들은 금강산의 모든 유적들과 문화유산들을 하나하나 재확인하고 기록하였으며 사진으로 고착시키면서 자료들을 더욱 과학화, 세분화하고 풍부히 하기 위해 정열을 기울였다. 하루탐험이 끝나면 낮에 조사한 내용을 콤퓨터에 입력하고 하나하나 분석하느라 이들의 숙소는 밤늦게까지 불이 꺼질줄 몰랐다. 하지만 다음날에는 또다시 새 목적지를 향해 탐험의 길을 이어가군 하였다. 어느날 만물상구역에 대한 탐험을 끝내고 모두가 내려갈 차비를 서두르는데 오철수동무가 보이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돌아서야 할 형편이여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어지간히 지체되여 모두가 걱정하고있는데 그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풀포기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한그루의 떨기나무가 들려있었다. 모두가 의아해하는데 오철수동무는 미안해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게 금강국수나무라는겁니다.금강산에서만 볼수 있는 식물이지요.원래 바위짬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데 어떻게 토양에 뿌리를 박고있는지.하도 희귀해서...》 오철수동무는 마치 귀중한 보물처럼 어린나무를 두손으로 정히 어루만졌다. 늘 메고다니는 야책에 채집한 식물들을 차곡차곡 정리해놓고 숙소에서는 그것들을 표본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분류하고 말리우느라 극성인 그의 열정에 누구나 탄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짬짬이 하는 그의 강의를 통하여 이제는 모두가 금강이란 이름이 붙은 동식물이 모두 60여종이나 된다는것을 상식으로 알고있었다. 《오선생이 얼마나 식물을 사랑하는지 잘 알게 되였소.이것이 금강산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이지.》 량도준동무의 말에 모두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정녕 그러했다.금강산의 오솔길, 바위와 물, 풀 한포기도 자기 살붙이처럼 정답게 여기는 이들이였다. 이것은 아름다운 금강산에 대한 애착이였고 이런 재부를 가지고있는 내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였다. 금강산은 매번 오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군 하였다. 외금강이며 내금강 그 어디에 가보아도 높고낮은 봉우리와 계곡, 여러가지 형태의 암석들과 폭포, 담소 등이 조화롭게 결합되여 훌륭한 경관들을 펼쳐보이는 금강산은 정말로 천下제일명산이였다.뿐만아니라 절터며 옛탑들, 바위우에 새겨진 많은 석문들, 수많은 전설과 일화 등 문화유산들이 풍부하고 그것이 자연과 결합된것으로 하여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틀어잡는 금강산이 단연코 세계유산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리라는 확신이 이들을 분발케 하였다. 이러한 자부와 긍지는 연구조사자료에 근거하여 추천문건을 작성하는 단계에서도 높이 발휘되였다. 연구집단성원들은 탐험길보다 더 어려웠던것이 추천문건작성과정이였다고 말하군 한다. 이미 등록된 세계유산들과의 대비속에서 금강산이 가지는 세계적가치를 밝혀내야 하는 연구는 또 하나의 힘겨운 탐구과정이였다. 수만페지에 달하는 세계유산과 관련된 실무지도서들과 각종 참고문헌들, 다른 나라 세계유산들에 대한 방대한 량의 문헌자료들을 짧은 기간에 종합분석하고 금강산과 비교하기 위한 연구사업이 전면적으로 진행되였다. 애로와 난관이 많았지만 이들은 금강산지구의 높고 험한 산발들을 타고넘으며 구체적인 현지조사를 진행하여 얻은 전반적인 지질구성과 암석들의 구체적인 특징들에 근거하여 금강산의 지각발전력사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생물다양성을 포함하여 경관특징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하였다. 또한 풍부한 문화유산과 함께 다른 나라 세계유산들과의 구체적이며 정량적인 비교분석을 통하여 금강산의 특출한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조선의 명산 금강산이 명실공히 세계적인 명산이라는것을 과학적으로 론증하였다. 추천문건을 17차례나 다시 작성한 사실은 이들의 고심어린 노력이 과연 어떤것이였는가를 말해주고있다. 이에 따르는 번역사업을 위해 리무일, 김수련동무를 비롯한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의 번역력량이 동원되여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추천서의 내용이 달라지는데 맞게 연 수만페지를 재번역하면서 1천 수백페지에 달하는 추천문건을 훌륭히 완성할수 있었다. 여기에 법학부의 박희철소장과 연구사 정선경동무를 비롯하여 학부의 많은 전문가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우리 나라에서의 유산보호와 관련한 법적근거들을 충분히 안받침함으로써 마침내 완성된 추천문건이 국제기구에 제출되였다. 문화유산보호부문의 일군들이 기울여온 노력도 연구집단성원들에게 큰 힘이 되였다.해당부문의 전문가로서 리성철동무는 국제기구와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연구집단의 현지탐험을 조직하고 추천문건작성사업을 이끌어 우리의 명산이 세계에 빛을 뿌리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들의 열렬한 조국애는 추천문건의 첫대목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금강산-바다에서 솟아오른 금강석의 산》 이렇게 박아넣은 첫 문장은 대번에 국제기구성원들의 심금을 울리였다. 이렇게 되여 유네스코에서 파견한 현지평가조가 지난해에 우리 나라를 찾게 되였다.현지평가조성원들은 우리 전문가들의 수준이 높고 명승지와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 보호관리가 당과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국가적인 관심속에 진행되고있는데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모두의 뜨거운 애국심은 우리 조국의 명산이 온 세상에 더욱 빛나게 하였다. 근 10년이라는 오랜 세월 깊고깊은 산중에 새겨온 이들의 자욱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적인 명산으로 더욱 빛나는 금강산과 더불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애국의 자욱은 우리 인민들과 후대들의 마음속에 길이 남아있게 될것이다. 지금 이 시각도 이들은 묘향산, 칠보산 등 조국의 명산들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탐구의 길, 애국의 길을 묵묵히 걷고있다. 공로혁 조국이 값높은 칭호로 내세워준 사람들 공훈과학자 최성동무 경제강국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과학연구사업에 지혜와 정열을 다 바쳐가고있는 미더운 과학자들속에는 국가과학원 현대화연구소 소장 최성동무도 있다. 인민들에게 더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안겨주려는 당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일떠선 현대적인 대규모온실농장들과 공장, 기업소들의 통합생산체계들에는 최성동무의 피타는 노력과 탐구의 열정이 깃들어있다. 생산의 과학화를 실현하는데 필수적인 통합생산체계를 연구도입하는 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하여 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최성동무는 2015년 12월 공훈과학자의 값높은 칭호를 받아안았다. 그후에도 그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숭고한 뜻에 떠받들려 현대적으로 일떠선 강동종합온실농장에 지능형통합생산체계를 구축할데 대한 과업을 받아안은 후 우리의 힘과 기술로 우리 식의 완벽한 통합생산체계를 도입함으로써 당의 권위를 철저히 보위할 높은 목표를 세우고 연구사업에 달라붙었다. 이전시기 건설한 온실농장들도 그러했지만 강동종합온실농장은 10여가지의 선진기술이 처음으로 도입된 첨단급의 온실로서 그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생산체계 역시 이전보다 훨씬 발전적이여야 했다.막아서는 애로와 난관을 과감히 뚫고헤치며 최성동무는 100% 우리의 기술과 자원에 의거한 지능형통합생산체계를 완성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기쁨을 드리고 높은 평가의 말씀도 받아안게 되였다. 최성동무를 비롯한 연구집단은 지능화된 통합생산체계의 완벽한 구축으로 새로 건설된 온실농장들에서 남새생산의 과학화를 보다 높은 수준에서 실현한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높은 과학연구실적으로 어머니당을 충직하게 받들기 위하여 사색과 탐구의 강행군길을 계속 이어가고있다. 글 및 사진 김진희 공훈사적강사 엄성옥동무 영광군혁명전적지관리소 과장 엄성옥동무는 단발머리처녀시절부터 30여년간 절세위인들의 혁명력사와 혁명업적을 보위하고 빛내이는 영예로운 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낮에는 참관자들과 함께 가파로운 산길을 편답하며 실효성있는 강서를 보장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였으며 밤이면 혁명전적지를 더욱 훌륭히 꾸리기 위한 사업에 자신의 깨끗한 진정을 아낌없이 바쳤다.또한 령도업적단위들을 비롯한 나라의 방방곡곡에 달려나가 이동강서를 항일유격대식으로 참신하게 벌려 인민들의 혁명열, 투쟁열을 북돋아주었으며 신입강사들의 정치리론수준과 강서술을 높이는 사업에 품을 아끼지 않았다. 그 나날에 그는 조선로동당 제8차 사상일군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니였으며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대의원으로 성장하게 되였다. 당에서는 수십년세월 맡은 초소를 성실히 지켜오고있는 그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여 2022년 12월 공훈사적강사의 값높은 칭호를 안겨주었다. 글 및 사진 김성훈 공훈교원 림영희동무 신의주제1중학교 강좌장 림영희동무가 수십년전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배치받은 곳은 시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학교였다. 그는 농촌학교의 학생들도 도시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못지 않게 키우겠다는 야심만만한 배심을 지니고 학교당조직의 지도밑에 학생들의 실력을 높이는데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나갔다. 이렇게 품을 들인 보람이 있어 몇년이 흘러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시적으로 진행된 학과경연에 참가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후 다른 중학교로 조동된 그는 교원들은 발전하는 현실을 따라갈것이 아니라 앞질러가야 한다는 당의 뜻을 높이 받들고 자신의 자질을 높이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 나날 10여건에 달하는 새 교수방법등록증과 실험기구 및 교편물창안증을 수여받았으며 10월8일모범교수자의 영예도 지니였다. 10여년전부터 신의주제1중학교에서 강좌장으로 사업하고있는 그는 교수의 실효성을 제고하는데 모를 박고 모든 형태의 교수를 학생들의 수준과 년령심리적특성에 맞게 진행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려 수십명에 달하는 7.15최우등상수상자들을 키워냈다. 제14차 전국교원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의 영광을 지닌 그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도 지니였다. 2023년에 공훈교원칭호를 수여받은 림영희동무는 오늘도 당의 교육혁명방침관철을 위한 길에 자신의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글 및 사진 리수연 공존할수 없는 두 마음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모든 사회성원들이 당과 혁명,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량심적으로 성실하게 살며 일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당과 조국이 값높이 내세워준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과 공산주의어머니영예상수상자들을 비롯하여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들에게서 꼭같이 찾아보게 되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량심앞에 부끄럼없이 살아왔다는것이다. 량심에 대하여 누구나 말은 많이 하지만 그 량심앞에 언제나 떳떳하게 산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리익과 자기 가정의 행복에 대한 생각이 있다. 하지만 혁명의 리익을 그앞에 놓는가 아니면 뒤전에 밀어놓는가에 따라 량심적인 인간이 될수도 있고 리기적인 인간이 될수도 있다. 량심은 리기심과 공존할수 없다. 량심은 조국과 인민, 사회와 집단앞에서 자기의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마음이다. 사리와 공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집단,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진실하게 살며 일하려는 마음을 지닌 량심의 인간에게는 리기심이 뿌리내릴 자리가 없다. 반면에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만 편안하고 잘살겠다는 리기심을 앞세우면 저도 모르게 량심이 흐려지게 되고 나중에는 깡그리 잃게 된다. 언제나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량심앞에 떳떳하게 살면 애국자가 되고 자신의 안일과 향락을 위해 리기심에 물젖으면 부父母처자도 나라도 모르는 속물이 되고만다. 누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대답해보자. 나에게는 무엇이 있는가.량심인가 아니면 리기심인가. 한없이 고마운 어머니당과 조국을 나는 순결한 량심으로 받들어가고있는가. 당과 조국의 은덕을 공화국공민으로서 받아안는 응당한것으로 여기며 나 하나만을 위해 살고있지는 않는가. 본사기자 애국의 마음 안고 도안창작에 지혜를 합쳐가고있다. -선교편직공장에서- 본사기자 리설민 찍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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